노벨경제학상으로 읽는 경제학

낙찰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승자의 저주와 경매이론

econinsight365 2026. 8. 29. 08:00

🏆 노벨경제학상으로 읽는 경제학 ⑦

 

 

2020년 노벨경제학상으로 이해하는 ‘승자의 저주’와 경매이론

경매에서 원하는 물건을 낙찰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결국 내가 주인이 됐습니다. 보통은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나만큼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았을까?”

 

경매에서는 이 질문이 의외로 중요합니다.

내가 물건의 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알아봤기 때문에 이겼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그 물건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기 때문에 이겼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가능성을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부릅니다.

2020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폴 밀그럼(Paul Milgrom)은 사람들이 경매에서 어떻게 가격을 결정하는지, 정보와 불확실성이 입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연구가 경매이론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실제 통신 주파수와 같은 희소한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새로운 경매방식의 설계로 이어졌습니다.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의 수상 업적을 ‘경매이론의 발전과 새로운 경매방식의 발명’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경매에서 이긴 사람이 왜 오히려 후회할 수 있을까요?

 

바쁜 분들을 위한 핵심 요약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반드시 경제적인 승자인 것은 아닙니다.


실제 가치가 불확실한 물건에서는 가장 낙관적으로 평가한 사람이 낙찰받기 쉽고, 그 결과 실제 가치보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승자의 저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경매에서 승자의 저주가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물건과 누구에게나 비슷한 경제적 가치를 갖는 자산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밀그럼과 윌슨의 연구가 보여준 더 중요한 사실은 경매의 결과가 참가자뿐 아니라 경매의 규칙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경매는 단순히 가장 높은 가격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가진 정보가 드러나고 희소한 자원이 보다 적절하게 배분되도록 규칙을 설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임영웅 콘서트 티켓이라면 얼마까지 낼 수 있을까?

먼저 친숙한 상황을 하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임영웅 콘서트의 특별 좌석 한 장을 경매로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열성 팬인 A씨는 생각합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공연인데 50만 원까지는 낼 수 있어.”

다른 사람은 30만 원 정도면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임영웅 노래를 가끔 듣는 사람은 15만 원 이상이라면 가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맞는 것일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콘서트에서 얻는 만족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열성 팬에게 50만 원의 가치가 있다면 다른 사람이 “그 티켓의 진짜 가치는 20만 원이야”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가치를 사적 가치(Private Value)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경매가 이렇지는 않습니다.

 

포항 앞바다의 석유·가스 개발권을 경매한다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포항 앞바다의 어느 해역에서 대규모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발견됐고, 정부가 개발권을 여러 석유회사에 경매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문제는 바다 밑에 석유와 가스가 정확히 얼마나 묻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각 회사는 지질자료와 탐사정보, 예상 매장량, 국제유가, 개발비용 등을 분석해 개발권의 경제적 가치를 추정합니다.

A사는 30조 원, B사는 35조 원, C사는 40조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D사는 훨씬 낙관적입니다.

“예상보다 많은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을 것이다. 이 개발권은 50조 원의 가치가 있다.”

결국 D사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해 개발권을 따냈습니다.

처음에는 성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시추와 추가 탐사를 해보니 경제성 있는 매장량이 예상보다 적었고, 개발비용까지 고려한 경제적 가치는 32조 원 정도였습니다.

D사는 경매에서는 이겼지만 개발권의 가치를 가장 크게 과대평가한 회사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회사는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회사였을까요? 아니면 가장 낙관적으로 잘못 판단한 회사였을까요?

바로 여기에서 승자의 저주가 시작됩니다.

 

 

 

콘서트 티켓과 석유·가스 개발권은 무엇이 다를까?

두 사례를 비교하면 차이가 쉽게 보입니다.

임영웅 콘서트 티켓은 열성 팬에게 훨씬 큰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같은 좌석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가 달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반면 포항 앞바다의 특정 지층에 실제로 석유와 가스가 얼마나 묻혀 있는지는 어느 회사가 개발권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회사마다 가진 정보와 분석방법이 달라 추정하는 가치가 다를 뿐, 실제 시추를 하면 결과가 드러납니다.

이처럼 참가자들이 서로 다르게 추정하지만 실제 가치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큰 경우를 공통 가치(Common Value)라고 합니다.

승자의 저주는 특히 이런 공통 가치가 중요한 경매에서 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위험할까?

석유 개발권의 실제 가치를 정확하게 아는 회사는 없습니다.

어떤 회사는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할 것이고, 어떤 회사는 높게 평가할 것입니다.

 

그런데 경매에서 누가 이길 가능성이 높을까요?

대체로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한 회사입니다.

문제는 이 회사가 반드시 가장 정확하게 평가한 회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낙관적인 추정을 한 회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매에서 이겼을 때는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다른 회사들은 이 가격까지 따라오지 않았을까?”

내가 낙찰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윌슨은 공통가치 경매에서 합리적인 입찰자라면 이러한 승자의 저주 가능성을 예상해 보다 신중하게 입찰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아파트 경매에서도 승자의 저주가 나타날까?

우리에게 익숙한 아파트 경매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가 경매에 나왔다고 해보겠습니다.

실제로 거주할 사람에게는 직장과의 거리, 자녀의 학교, 주변 환경, 전망 등이 중요합니다. 같은 아파트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가 다릅니다.

이것은 사적 가치에 가깝습니다.

 

반면 몇 년 뒤 이 아파트를 얼마에 팔 수 있을지, 주변 집값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입찰자들에게 어느 정도 공통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현실의 부동산에는 사적 가치와 공통 가치가 함께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높은 가격에 낙찰받았다고 무조건 승자의 저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쟁이 붙으면서 “저 사람에게만은 빼앗기기 싫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쓰자.”라는 생각이 앞서기 시작한다면 처음 계산했던 적정가격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좋은 가격에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밀그럼과 윌슨의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승자의 저주를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경매의 규칙을 잘 만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이 실제 정책과 만난 대표적인 사례가 통신 주파수 경매입니다.

휴대전화와 무선통신에 필요한 주파수는 한정돼 있습니다. 정부는 이 희소한 자원을 통신회사들에 배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파수의 가치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통신회사가 서울 지역의 주파수를 확보했다면 경기·인천 지역의 주파수까지 함께 확보했을 때 더 큰 가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차례로 경매하면 서울 주파수를 비싸게 낙찰받은 뒤 정작 필요한 다른 지역의 주파수를 경쟁사에 빼앗기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가 경매의 규칙을 바꾸다

밀그럼과 윌슨은 여러 주파수를 동시에 경매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입찰할 수 있는 방식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기업들은 한 번 가격을 써내고 결과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주파수의 가격 움직임을 보면서 판단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서울은 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하군.”

“이 가격이라면 다른 지역을 선택하는 편이 낫겠다.”

“이 정도 가격이면 사업성이 없으니 여기서 그만두자.”

다른 참가자들의 행동과 가격 움직임이 새로운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 자신이 처음 세웠던 가치평가와 입찰전략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1994년 미국은 이러한 경제학 연구가 반영된 새로운 방식으로 통신 주파수 경매를 실시했고, 이후 유사한 방식이 여러 나라로 확산됐습니다. 노벨위원회 역시 두 경제학자가 새로운 경매방식을 개발해 현실의 복잡한 자원배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에서 경제학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과거의 질문이 “사람들은 경매에서 어떻게 행동할까?”였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은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진 정보가 더 잘 드러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어떤 규칙을 만들 것인가?”가 됩니다.

 

경제학이 시장을 관찰하고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장이 더 잘 작동하도록 규칙을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기업 인수전에서도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승자의 저주는 기업 인수합병(M&A)을 볼 때도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어떤 기업이 인수 대상 회사의 적정가치를 10조 원 정도로 평가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경쟁자가 나타나 가격을 계속 높입니다.

10조 원, 11조 원, 12조 원, 13조 원….

어느 순간 질문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회사의 가치는 얼마인가?”를 생각했는데 경쟁이 과열되면 “얼마를 써야 경쟁자를 이길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질문은 전혀 다릅니다.

물론 높은 가격에 이루어진 모든 기업 인수가 승자의 저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수기업마다 기대하는 시너지와 전략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치에 대한 판단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에는 승자의 저주를 한번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시장은 경쟁자만 많이 모으면 만들어질까?

경쟁자가 많으면 일반적으로 판매자는 높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밀그럼과 윌슨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경쟁자의 수만큼 경쟁의 규칙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참가자들이 어떤 정보를 볼 수 있는지, 한 번만 입찰하는지 여러 번 입찰하는지, 서로 관련된 여러 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거래하는지에 따라 시장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설계(Market Design)는 단순히 시장에 맡길 것인가 정부가 개입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와는 조금 다릅니다.

시장을 이용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 것입니다.

“어떤 규칙의 시장을 만들 것인가?”

 

경매이론은 경제학이 시장에서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시장 자체의 규칙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까지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020년 노벨경제학상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걸음 더

임영웅 콘서트 티켓과 포항 앞바다 석유 개발권은 전혀 다른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례를 비교하면 경매의 본질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콘서트 티켓은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반면 석유 개발권은 실제 가치가 얼마인가를 얼마나 정확하게 추정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아파트나 기업은 이 두 가지 성격을 어느 정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매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반드시 “얼마를 불러야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가치가 불확실하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나만큼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았을까?”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언제나 경제적으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가격을 더 올리지 않고 물러나는 사람이 가장 합리적인 참가자일 수도 있습니다.

 

밀그럼과 윌슨의 경매이론은 여기서 개인의 선택을 넘어섭니다.

좋은 시장은 경쟁자를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가진 정보가 드러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수정할 수 있도록 경쟁의 규칙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결국 좋은 경매는 가장 비싸게 파는 경매가 아니라, 정보와 경쟁을 통해 희소한 자원이 그것을 더 가치 있게 활용할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경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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