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경제학상으로 읽는 경제학 ③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와 행동경제학
마트에서 ‘1+1’ 행사 상품을 보며 계획에 없던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은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만 무료배송”
“가입만 하면 1만 포인트 지급”
“첫 달 무료”
우리는 이런 문구를 보면 왠지 이득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요?
경제학은 오랫동안 인간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가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감정에 흔들리고, 습관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가를 경제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가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입니다.
그리고 행동경제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입니다.
왜 행동경제학이 등장했을까?
전통적인 경제학 모형에서는 소비자와 투자자가 주어진 정보와 제약 아래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한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세일이 시작되면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사고, 주식이 오르면 더 오를 것 같아 뒤늦게 투자하기도 합니다. 손실이 나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회복될 것”이라며 쉽게 팔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이 단순히 몇몇 사람에게 나타나는 예외라면 경제학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판단의 오류가 많은 사람에게 반복적이고 일정한 방향으로 나타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합니다.
인간이 언제나 완벽하게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심리와 감정, 습관, 선택환경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세일러는 이러한 현실의 인간 행동을 경제학의 분석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왜 ‘0원’은 특별할까?
무료배송은 ‘0원’이라는 표현이 선택의 기준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줍니다. 상품 4만 원에 배송비 3천 원이 붙고, 5만 원 이상 주문하면 무료배송인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배송비를 없애려고 1만 원짜리 물건을 추가하면 지출은 4만3천 원에서 5만 원으로 늘어납니다.
그 순간에는 배송비 3천 원을 아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구매 전체에서는 7천 원을 더 썼습니다. 배송비만 별도의 손실처럼 바라보면, 장바구니의 총액이 늘었다는 사실은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추가한 물건이 원래 필요했다면 주문을 모으는 선택은 유리할 수 있습니다. 이 예시에서 문제는 무료배송 자체가 아니라, 배송비를 없애는 목표가 필요한 물건을 고르는 목표를 대신하는 경우입니다. 지출을 하나의 총액으로 볼 때와 상품값·배송비로 나누어 느낄 때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는 무료 가격의 매력에 더해, 지출 항목을 따로 받아들이는 심리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0원’이라는 가격의 매력만으로 모든 무료배송 구매를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에서는 여러 유인이 함께 작동합니다. 공짜를 좋아하는 마음을 비난하기보다, 그 표현이 선택의 어느 부분을 크게 보이게 했는지 살펴보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왜 손실은 이익보다 더 크게 느껴질까?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이익과 손실을 항상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합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을 손실회피(Loss Aversion)라고 합니다.
이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발전시킨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심리는 소비와 투자 등 다양한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숫자뿐 아니라 그 숫자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리이기도 합니다.
넛지(Nudge)는 무엇일까?
리처드 세일러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개념 가운데 하나가 넛지(Nudge)입니다.
‘넛지’는 영어로 ‘옆구리를 살짝 찌르다’, ‘가볍게 등을 떠밀다’라는 뜻입니다.
경제학에서는 강제로 명령하거나 금지하기보다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쉽도록 선택환경을 설계하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급식에서 과일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면 학생들이 과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도 처음부터 자동 가입되도록 하고 원하면 탈퇴할 수 있게 설계하면, 직접 가입을 신청해야 하는 방식과 비교해 가입률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도 특정 선택을 강제로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선택할 자유를 유지하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넛지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접근은 경제정책뿐 아니라 교육, 의료, 금융, 환경정책,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왜 리처드 세일러가 중요한가?
AI가 발전하고 금융시장이 빠르게 변해도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욕심과 두려움, 후회와 기대, 낙관과 공포는 시대가 바뀐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공짜’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투자자는 상승장에서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하락장에서 공포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택지가 제시되는 방식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를 이해하려면 금리·물가·주가 같은 숫자만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숫자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선택하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행동경제학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통찰입니다.
한 걸음 더
“첫 달은 무료니까 일단 써보자.”
가입할 때는 다음 달에 계속 사용할지 다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달 뒤에는 다른 일이 바쁘고, 해지 날짜를 잊거나 절차를 미루기도 합니다. 무료 체험을 선택한 순간과 유료 이용을 계속하는 순간에 똑같이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의 선택은 적극적인 신청이었지만, 이후의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결과일 수 있습니다. 결제가 계속된다는 사실만으로 매달 그만큼의 만족을 얻고 있다고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 사례에서 공짜의 힘은 첫 달의 가격에만 있지 않습니다. 서비스를 시작하기는 쉽게 만들고, 나중에 멈추는 일은 별도의 과제로 남겨둡니다. 혜택을 살필 때는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을 함께 보게 됩니다.
참고자료
Shampanier·Mazar·Ariely(2007), 「Zero as a Special Price: The True Value of Free Products」, Marketing Science : 본문에서 소개한 가격이 0원이 될 때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지는 실험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발표」 : 리처드 세일러의 심적회계 연구와 개별 지출을 나누어 판단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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