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을 늘리자는 논의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고령자가 회사에 더 오래 남아 있으면 청년들이 들어갈 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닐까?”
고령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년연장은 반가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일정한 나이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직장을 떠나야 한다면 소득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입장은 다를 수 있습니다. 기존 직원이 더 오래 근무하면 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이지 않을까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년연장은 고령자의 일자리와 청년의 일자리를 맞바꾸는 정책일까요?
경제학적으로 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30초 핵심 요약 : 정년연장과 청년고용의 관계]• 일자리 총량: 정년연장이 곧바로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자리 총량은 고정되어 있지 않음).• 핵심 과제: 정년연장이 신규채용에 미칠 수 있는 부담을 줄이려면 임금체계와 직무 재설계 등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정책 방향: 세대 간 제로섬 경쟁이 아닌, 고령자의 숙련된 경험 활용과 청년의 신규 기회 창출이 공존하는 노동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
왜 정년연장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을까?
우리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과거보다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직장에서 퇴직하는 시기와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확보하는 시기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이 직장에서 물러난 뒤 연금 등으로 충분한 소득을 확보하기까지 공백이 생기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서 정년연장은 단순히 근무기간을 몇 년 늘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임금체계와 승진, 신규채용, 인력배치 등 조직 전체의 인사제도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정년연장은 단순한 복지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과 기업의 인력운용, 노후소득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경제문제입니다.
고령자가 더 일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까?
우리는 흔히 회사에 일자리가 100개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령근로자 10명이 퇴직하면 청년 10명이 들어가고, 이들이 퇴직하지 않으면 청년 10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체의 일자리 수가 항상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에서는 노동시장의 일자리 총량이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생각을 흔히 ‘일자리 총량의 오류(Lump of Labor Fallacy)’라고 부릅니다.
고령자가 계속 일하면서 소득을 얻으면 소비도 이어집니다. 기업이 숙련된 근로자의 경험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사업을 확대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등장하면 전체 일자리 역시 늘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령자 일자리 하나가 늘어나면 청년 일자리 하나가 반드시 사라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청년고용에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경제 전체의 일자리 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지만, 개별 기업의 인건비와 정원은 단기간에 크게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인건비 예산을 거의 늘리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이 높은 고령근로자의 근무기간을 연장한다면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근속연수가 길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형 임금체계에서는 이러한 부담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숙련된 고령근로자가 후배를 교육하고 기술과 경험을 전달하면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인다면 장기적으로 사업이 확대되고 새로운 고용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정년을 몇 년 늘리느냐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60세 정년 의무화가 청년고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2019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민간사업체에서는 정년연장으로 고령자 고용이 1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될 때 청년고용이 약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규모가 큰 사업체나 기존 정년이 낮았던 사업체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공공부문에서는 고령자 고용 증가에도 청년고용 감소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기업의 특성과 인사·임금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는 당시 한국의 60세 정년 의무화에 대한 분석 결과입니다. 앞으로 추진할 정년연장에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년을 몇 년 연장하느냐뿐 아니라 기업이 인건비와 신규채용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느냐입니다.
핵심은 정년보다 임금체계일 수도 있다
정년을 늘린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기존 임금체계와 직급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근무기간만 늘린다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이에 대응해 신규채용을 줄이거나 승진을 늦추려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정년 이후 직무와 근무시간을 조정하거나 직무와 역할을 보다 반영하는 임금체계를 운영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년연장 논의에서는 “몇 살까지 일하게 할 것인가?”와 함께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임금을 받을 것인가?”를 같이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령자의 고용안정만 생각하고 기업의 비용을 무시해서도 곤란하고, 기업의 비용만 생각해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을 노동시장에서 지나치게 빨리 내보내는 것도 경제 전체로 보면 손실이 될 수 있습니다.
정년연장과 계속고용은 같은 것일까?
여기서 제도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년연장은 기존 정년 자체를 높이는 방식입니다.
계속고용은 정년연장, 정년폐지, 정년퇴직 후 재고용 등을 통해 고령자가 계속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는 정년연장과 정년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두 제도는 근로자에게 더 오래 일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기업의 인사·임금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정년연장은 기존 고용관계가 더 오래 이어지는 성격이 강하고, 재고용 방식은 직무·근로시간·임금 등을 새롭게 조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년연장이냐 계속고용이냐는 이름보다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기업의 인력운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입니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고령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특히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은 같은 개념이 아니므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65세까지 고용기회를 확보한다
일본은 고령화에 일찍 대응한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2025년 4월부터 65세까지의 고용확보조치가 전면 시행됐습니다. 기업은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거나, 정년제를 폐지하거나, 계속고용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일본의 법정 정년이 모두 65세가 됐다”고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70세까지의 취업기회 확보도 기업의 노력의무로 두고 있습니다.
즉 일본은 정년연장 하나만을 선택하기보다 기업이 계속고용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함께 두고 있습니다.
미국: 일률적인 정년보다 연령차별 금지가 중요하다
미국은 접근방식이 상당히 다릅니다.
일반 민간근로자에게 한국의 법정 정년과 같은 일률적인 강제퇴직 연령을 두기보다 연령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과 강제퇴직을 제한하는 방식이 중심입니다. 연금제도에서 정상퇴직연령을 정할 수는 있지만 그 연령에 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를 반드시 퇴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65세나 67세 같은 숫자는 ‘회사에서 반드시 나가야 하는 나이’와 동일한 개념으로 보면 안 됩니다.
미국 사례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가”와 “언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는가”를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유럽: 국가마다 다르지만 연금 수급연령은 높아지는 추세
유럽 역시 하나의 정년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별 노동법과 연금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유럽의 정년은 65세”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OECD 자료를 보면 정상적인 공적연금 수급연령도 독일은 약 66세, 영국은 66세, 프랑스는 64세 안팎 등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국가별 제도와 가입기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보다 방향입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여러 국가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미국·유럽의 사례를 종합하면 고령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순히 ‘법정 정년을 몇 살로 올릴 것인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년연장, 계속고용, 연령차별 금지, 연금 수급연령 조정 등 다양한 방법을 각국의 노동시장과 연금제도에 맞게 조합하고 있습니다.
정년연장은 경제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까?
정년연장의 효과를 청년고용만으로 판단해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하면 근로소득을 얻는 기간이 늘어납니다. 소득이 유지되면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완화할 수 있고, 숙련된 근로자의 경험과 기술을 더 오래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노동력이 줄어드는 고령사회에서는 일할 의사가 있는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자체가 경제의 생산능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조직의 인력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면 생산성과 신규채용에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정년연장의 경제적 효과는 고령자 고용률 하나가 아니라 청년고용, 임금, 생산성, 기업 부담과 노후소득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청년과 고령자는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일까?
일부 기업이나 특정 직종에서는 세대 간 경쟁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 전체를 고령자와 청년이 한정된 일자리를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으로만 보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고령근로자는 오랜 경험과 숙련을 가지고 있고, 청년근로자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강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업이 두 세대의 장점을 적절하게 결합한다면 경쟁관계만이 아니라 보완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도 단순히 “고령자의 일자리를 늘릴 것인가, 청년의 일자리를 보호할 것인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합니다.
한 걸음 더
저 역시 정년퇴직 뒤 다른 분야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쌓은 경험이 있어도 새로운 일에서는 다시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익숙한 업무를 오래 잘하는 것과 새로운 환경에서 역할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이 경험을 돌아보면 정년연장은 퇴직 시점을 몇 년 늦추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쌓아온 경험을 어디에 활용하고, 달라진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어떻게 익힐지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청년에게도 일할 기회와 배울 기회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살리는 방향에서 정년연장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정년만 늘리고 임금체계와 직무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기업의 부담과 청년 신규채용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년연장을 청년고용의 적으로만 본다면 고령화 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숙련인력과 노동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정년, 임금체계, 직무, 계속고용, 청년채용을 하나의 문제로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정년연장의 핵심 질문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하면서도 청년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노동시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년연장의 성패는 단순히 퇴직연령을 몇 년 늦추느냐가 아니라, 세대가 일자리를 빼앗는 구조가 아니라 경험과 기회를 나눌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핵심 경제학 용어 정리]• 일자리 총량의 오류 (Lump of Labor Fallacy): 경제 전체의 일자리 양이 고정되어 있어서 누군가 일자리를 얻으면 다른 사람의 일자리가 반드시 줄어든다고 착각하는 오류입니다.• 연공형 임금체계: 직무나 성과뿐 아니라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성격이 강한 임금체계로, 정년연장 시 기업의 인건비 부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계속고용제도: 정년 연장 외에도 정년 폐지, 정년 후 재고용 등을 포함하여 고령자가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
참고자료
한국개발연구원(KDI),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민간·공공부문의 고용효과와 사업체 특성에 따른 차이를 분석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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