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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경제학

econinsight365 2026. 8. 3. 00:00

경제학은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일까요?

 

경제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성장률과 물가, 금리와 환율, 주가 같은 경제지표를 떠올립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학이 만들어 내는 결과를 보여 주는 숫자들입니다. 경제학이 처음부터 붙잡았던 질문은 훨씬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시대와 문명을 달리하면서도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경제라는 말에 담긴 철학

우리말 '경제(經濟)'는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경세'는 세상을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이고, '제민'은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경제라는 두 글자에는 나라를 올바르게 운영하여 백성이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경제는 처음부터 부를 축적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국가 운영의 원리였습니다.

 

서양의 경제학도 다른 길을 걸었을 뿐 출발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Economics는 그리스어 oikos(가정)와 nomos(관리)에서 유래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을 슬기롭게 운영하는 지혜를 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전체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배분해야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발전했습니다.

 

동양은 '경세제민'이라는 말로 경제의 목적을 표현했고, 서양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그 목적을 체계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발전했지만, 두 전통이 향한 곳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사람의 더 나은 삶.

애덤 스미스, 자유에서 번영을 찾다

1776년 영국에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출간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중상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국가는 금과 은을 많이 축적할수록 부유해진다고 믿었고, 무역과 산업을 강하게 통제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통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진정한 국부는 창고 속의 귀금속이 아니라 국민의 노동과 생산성, 그리고 자유로운 분업과 교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는 부를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이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덤 스미스를 '이기심을 옹호한 경제학자'로 기억하지만, 이는 그의 사상의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그는 《국부론》보다 먼저 《도덕감정론》을 통해 인간의 공감과 도덕성을 설명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적 규범을 존중하는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은 무조건적인 이기주의가 아니라 책임 있는 자기이익의 추구였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신뢰와 법치, 도덕이라는 토대 위에서 작동할 때 개인의 번영은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공동선의 관점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이 학문은 'Economics'보다 'Political Economy', 즉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불렸습니다. 경제를 시장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국가 운영과 제도, 사회질서까지 함께 고민하는 분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정약용, 백성에게 길을 묻다

1817년 조선에서 정약용은 《경세유표》를 완성했습니다. 그가 마주한 현실은 삼정의 문란과 관리들의 부패로 백성들의 삶이 무너져 가던 시대였습니다.

정약용은 현실을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제도와 행정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경세유표》는 단순한 행정 지침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한 국가를 설계하려는 개혁의 청사진이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와 정약용의 해법은 달랐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번영의 가능성을 찾았고, 정약용은 올바른 제도와 행정에서 민생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은 시장을 바라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국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같았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경제학이 향하는 곳

오늘날 경제학은 인공지능과 기후변화,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 같은 새로운 과제를 연구합니다. 연구 대상은 달라졌지만 경제학이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경제성장률과 GDP, 물가와 주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경제가 성장해도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경제학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공동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시장도, 국가도, 제도도 모두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삶을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고, 더 존엄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250여 년 전 애덤 스미스가 꿈꾸었던 사회와 200여 년 전 정약용이 그리고자 했던 나라는 서로 달랐지만, 그들이 품었던 이상은 하나였습니다.

 

사람이 중심인 사회.

어쩌면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오래된 글자는 오늘날에도 경제학의 본질을 가장 아름답게 설명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경제학은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도 아닙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경제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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