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시선

전쟁은 모두에게 손해인데 왜 일어날까? 경제학으로 읽는 전쟁과 평화

econinsight365 2026. 8. 19. 00:00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군사력입니다. 어느 나라가 더 강한지, 어떤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전선이 어디까지 움직였는지가 관심의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전쟁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생산시설을 파괴하고 교역을 막으며 막대한 재정을 소모합니다. 승리한 국가조차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 협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쟁은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최근의 미국과 이란의 전쟁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전쟁이 모두에게 손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국가는 전쟁을 선택할까요?

이 질문은 정치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게임이론과 경제학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핵심 요약

• 전쟁은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전쟁보다 협상이 양측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상대방의 군사력과 의도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협상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 합의 이후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커미트먼트 문제도 전쟁의 원인이 됩니다.
• 전쟁의 경제적 충격은 에너지 가격과 물가, 금리, 소비와 투자를 통해 세계경제로 확산됩니다.
• 장기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보다 협력이 더 유리해지는 제도와 신뢰가 필요합니다.

 

전쟁에는 협상으로 피할 수 있는 비용이 있습니다

두 나라가 하나의 자원을 놓고 다투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100을 얻을 수 있지만 싸우는 동안 30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패배할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실제 기대이익은 더욱 낮아집니다.

그렇다면 양국에는 전쟁을 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이익을 나눌 여지가 생깁니다.

전쟁으로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보다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상대에게 제시하면 양쪽 모두 전쟁보다 협상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전쟁은 매우 비싼 거래 방식인 셈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합리적인 협상이 자주 실패합니다.

왜 그럴까요?

셸링은 전쟁을 전략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Thomas C. Schelling)입니다.

셸링은 냉전시대 핵전쟁과 군사적 대립을 게임이론으로 분석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갈등의 전략(The Strategy of Conflict)》은 전쟁을 단순한 군사력의 충돌이 아니라 상대방의 선택을 고려하는 전략적 상호작용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억지(deterrence)입니다.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실제로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제정치에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위협해야 하고, 그 위협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행동할 가능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나 위협의 강도가 계속 높아지면 어느 순간 물러서기 어려워집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셸링은 이러한 갈등과 협력에 대한 게임이론적 연구로 로버트 오먼(Robert J. Aumann)과 함께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전쟁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협상의 실패입니다

이 문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연구가 정치학자 제임스 피어런(James D. Fearon)의 1995년 논문 「전쟁에 대한 합리주의적 설명(Rationalist Explanations for War)」입니다.

피어런은 매우 간단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쟁이 비용을 발생시킨다면 전쟁보다 나은 협상안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왜 전쟁이 일어날까요?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보의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입니다.

국가는 자신의 군사력과 전쟁 의지에 대해 상대방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정보를 솔직하게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약한 나라라도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해 강한 척할 수 있습니다.

강한 나라 역시 상대방을 물러서게 하기 위해 실제보다 더 강한 전쟁 의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능력과 의지를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전쟁을 원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결국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약속을 믿을 수 없을 때도 전쟁은 일어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신뢰입니다.

오늘 합의했다고 해도 상대방이 내일 그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면 협상은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군사력을 축소하는 대신 상대국이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군사력을 줄인 뒤 상대국이 약속을 깨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보다 훨씬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양쪽 모두 평화를 원하더라도 상대방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합의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신뢰할 수 있는 약속의 문제, 즉 커미트먼트 문제(commitment problem)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바라볼 때도 이러한 경제학적 시각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적인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양측 모두 전쟁이 가져올 막대한 비용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왜 협상을 통해 충돌을 피하지 못했을까요?

미국은 이란의 군사적 능력과 대응 의지를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란 역시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군사력을 사용할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양측에는 자신의 의지를 실제보다 강하게 보여줄 유인도 존재합니다.

여기에 합의 이후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지면 협상의 공간은 좁아집니다.

셸링의 억지이론과 피어런의 협상이론이 현실에서 만나는 지점입니다.

 

전쟁의 비용은 두 나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세계 에너지 시장 때문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이동하는 핵심 통로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쟁으로 이곳의 운송이 어려워지면 충격은 중동에 머물지 않습니다.

원유 공급 불안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업의 생산비와 운송비를 높입니다.

결국 물가가 오르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높은 금리는 투자와 소비를 억제하면서 경제성장에도 부담을 줍니다.

전쟁의 충격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세계경제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전쟁과 운송 차질 → 에너지 가격 상승 → 생산비 증가 → 물가 상승 → 금리 부담 → 소비와 투자 위축

결국 전쟁의 당사자는 몇 개 국가일 수 있지만 경제적 비용은 세계 여러 나라와 소비자들이 함께 부담하게 됩니다.

 

 

 

 

평화에도 경제적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경제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경제학자 폴 콜리어(Paul Collier)는 내전과 빈곤, 경제성장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했습니다.

콜리어의 연구에 따르면 전쟁은 단순히 그 기간 동안의 생산만 감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계속되면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자본은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생산적인 산업에서 자원이 이탈하고 정부의 재정 역시 생산적 투자보다 군사비와 전후 복구 등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도로와 공장 같은 물적 자본만 파괴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정부의 행정능력, 시장을 지탱하는 제도까지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총성이 멈췄다고 경제가 곧바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이 끝난 뒤 얻는 경제적 이익을 평화배당(peace dividend)이라고 부르지만, 평화배당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한 휴전 이상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와 신뢰가 함께 복원되어야 합니다.

 

오먼은 반복되는 관계에서 평화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경제학자 로버트 오먼(Robert J. Aumann)의 연구가 다시 중요해집니다.

한 번만 만나는 상대라면 배신해서 얻는 단기적인 이익이 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만나야 하는 상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늘 상대를 배신하면 내일 보복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오늘 협력하면 상대도 다음에 협력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오먼의 반복게임(repeated games) 연구는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협력이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국가 간 관계에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역과 투자, 외교적 교류가 반복되고 상대방과 앞으로도 계속 거래해야 한다면 전쟁으로 얻는 단기적인 이익보다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장기적인 이익이 커질 수 있습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쟁보다 협력이 더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다시 미국과 이란을 바라보면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서도 전투와 동시에 협상의 가능성은 계속 존재합니다.

이 점은 경제학적으로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쟁 중에도 협상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전쟁으로 치르는 비용이 커질수록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협상 조건을 찾으려는 압력도 커질 수 있습니다.

국제유가가 전쟁과 협상 관련 소식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시장은 단순히 오늘의 전투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송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루어질지, 원유 공급이 정상화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계산합니다.

전쟁터에서는 군대가 움직이지만 시장에서는 기대가 움직입니다.

 

한 걸음 더

경제학이 전쟁의 모든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민족과 종교, 역사적 갈등, 지도자의 성향과 국내정치 등 경제학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가 수없이 많습니다.

경제학의 역할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경제학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모두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왜 협상은 실패하는가?

토머스 셸링(Thomas C. Schelling)은 그 답을 전략과 억지에서 찾았습니다.

제임스 피어런(James D. Fearon)은 정보의 비대칭과 신뢰할 수 없는 약속에서 찾았습니다.

로버트 오먼(Robert J. Aumann)은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협력이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폴 콜리어(Paul Collier)의 연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경제적 상처가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경제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에만 있지 않습니다.

전쟁보다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도록 우리는 어떤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가.

어쩌면 그것이 경제학으로 전쟁과 평화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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