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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공공주택은 누구를 위한 주거사다리일까?

econinsight365 2026. 9. 19. 17:28

 

세계 주요국의 주택정책에서 생각해 보는 공공주택의 역할

집은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인 동시에 한 가구가 보유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주택정책에는 항상 두 가지 목표가 충돌합니다. 국민의 주거안정을 지원해야 하지만, 동시에 특정 계층에게 혜택이 지나치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공공주택에서는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공공임대주택에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해 내 집 마련을 돕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공공이 계속 소유하면서 새로운 무주택자에게 순차적으로 임대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 질문은 결국 공공주택을 누구를 위한 ‘주거사다리’로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최근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전세주택 논란은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좋은 사례입니다.

 

[30초 핵심 요약 : 공공주택과 주거사다리]

• 주거사다리의 역할: 공공주택은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 주거비 부담을 낮춰, 가구가 여건에 맞는 다음 주거 단계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 분양전환 vs 재고 유지: 분양전환은 자산 형성을 돕지만 공공재고를 줄이며, 재고 유지는 순차적 입주 기회를 제공하지만 재정 부담을 유발합니다.
• 해외 사례: 오스트리아·덴마크는 장기 임대재고와 재투자를, 싱가포르는 공공지원과 자가보유의 결합을 선택했습니다.

 

20년을 살았다면 계속 살 수 있어야 할까요?

서울시는 2007년 장기전세주택을 도입했습니다. 주변 전세가격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최장 20년까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제 첫 번째 20년 만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7년 310호를 시작으로 2031년까지 약 9,300호가 만기를 맞을 예정입니다. 일부 입주민은 서울의 집값과 전셋값이 크게 상승했고 고령화 등으로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하기 어렵다며 거주기간 연장이나 분양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다른 입장입니다. 최초 계약부터 최장 20년 거주와 분양전환 불가가 명시돼 있었으며, 반환된 주택을 다른 무주택 시민에게 다시 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시는 만기 물량을 장기전세주택과 신혼부부 대상 ‘미리내집’ 등으로 재공급할 계획입니다.

어느 한쪽의 주장만 보면 답은 간단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보면 문제가 훨씬 복잡합니다.

기존 입주자의 주거안정과 새로운 무주택자의 입주기회가 하나의 공공주택을 놓고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주거사다리란 꼭 내 집을 소유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주거사다리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이동하면 주거사다리를 올라간다고 표현합니다.

공공주택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설계된 제도가 있습니다. 현재 LH에는 5년·6년·10년의 임대기간이 끝난 뒤 기존 입주자에게 우선 분양전환하는 공공임대주택이 있습니다.

 

논리는 분명합니다.

공공임대 입주 → 주거비 절감 → 자산 축적 → 분양전환 → 내 집 마련

공공주택이 무주택 가구의 자산형성을 도와 자가시장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잘 보지 않는 또 하나의 비용이 있습니다.

 

공공주택 한 채를 분양하면 무엇을 잃을까요?

공공임대주택 한 채가 기존 입주자에게 분양되면 그 가구는 주택을 소유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주택은 공공임대주택 재고에서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공공이 1만 채의 임대주택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가운데 1,000채를 기존 입주자에게 분양하면 공공임대 재고는 9,000채로 감소합니다. 다시 1만 채를 확보하려면 토지를 확보하고 새로 건설하거나 기존 주택을 매입해야 합니다.

 

따라서 분양전환에는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존재합니다.

한 가구의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대신, 별도의 공공주택이 추가로 확보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 집을 이용할 수 있었던 다른 무주택 가구의 기회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주택 정책은 얼마나 많이 새로 짓느냐뿐 아니라 이미 확보한 공공주택을 얼마나 오래 공공재고로 유지하느냐도 중요합니다.

 

‘회전하는 주거사다리’는 가능할까요?

주거사다리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A가구가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주거비를 절약하고 자산을 축적합니다. 경제적 여건이 개선되면 민간 임대시장이나 자가시장으로 이동합니다.

비워진 공공주택에는 B가구가 입주합니다.

B가구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이동하면 C가구가 들어옵니다.

A → B → C

한 채의 공공주택이 여러 가구의 주거사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회전하는 주거사다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장기전세주택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실제 퇴거자 가운데 상당수가 자가로 이동했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인용한 2022년 SH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2016~2021년 장기전세주택에서 퇴거한 1,708가구 중 72%가 조사 당시 자가에 거주했습니다. 서울시는 이를 장기전세가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자산을 축적해 다음 단계로 이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결과만으로 모든 장기 거주자가 20년 후 민간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령자나 저소득 가구처럼 여전히 주거지원이 필요한 가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공주택의 순환을 유지하더라도 소득·자산·연령과 주거취약성에 따라 다른 주거지원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함께 필요합니다.

 

공공주택을 계속 보유하면 재정부담은 누가 질까요?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공공주택을 분양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는 것이 공짜는 아닙니다.

처음에는 토지를 사고 주택을 건설해야 합니다. 이후에도 금융비용과 관리비가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면 수선과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수십 년 뒤에는 대규모 개보수나 재건축도 고려해야 합니다.

 

즉 공공주택을 장기간 보유하려면 다음과 같은 비용을 생각해야 합니다.

토지비·건설비 → 금융비용 → 관리비 → 수선비 → 대수선·리모델링 → 재건축

따라서 단순히 “분양하지 말고 계속 공공임대로 남겨두자”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공공임대주택을 장기간 유지하면서도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사회주택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오스트리아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좋은 사례입니다.

오스트리아에는 제한이윤 주택협회(Limited-Profit Housing Associations)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 기관은 장기간 시장가격보다 낮은 비용 기반 임대주택을 공급하며, 이익의 상당 부분을 토지 매입·신규 건설·기존 주택 개량에 다시 투자하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습니다.

임대료도 단순히 시장가격을 따라가기보다는 금융비용과 유지·개보수 비용 등을 충당하는 비용회수(cost-recovery) 원칙을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OECD는 이러한 제한이윤 주택협회의 운영방식이 오스트리아의 사회주택을 장기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최근에는 토지가격과 건설비, 금리 상승이 새로운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공지원 → 건설 → 임대 → 수입 → 재투자라는 순환구조입니다.

 

덴마크에는 ‘회전하는 주택기금’이 있습니다

덴마크 사례는 재정 측면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덴마크의 National Building Fund는 임차인의 임대료와 주택금융 상환과 연계된 재원을 축적하고, 이를 다시 신규 사회주택 건설과 기존 주택 개량 등에 사용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OECD는 이를 revolving structure, 즉 재원이 다시 주택 부문으로 돌아가는 회전형 구조로 설명합니다.

 

이 구조가 던지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공공주택을 공급할 때마다

세금 → 건설 → 임대 → 분양 → 다시 세금 → 신규 건설

이라는 방식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공공지원을 바탕으로

건설 → 장기임대 → 임대료와 금융상환 → 유지·개량 → 재투자

라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제도 역시 공공지원을 필요로 하고 금융비용과 건설비 상승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정부 재정과 완전히 독립적인 모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싱가포르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반대로 싱가포르는 공공지원과 자가보유를 강하게 결합한 사례입니다.

싱가포르 HDB는 주택을 시장가격보다 할인해 공급하고, 입지조건이 좋은 Plus와 Prime 주택에는 추가 보조금을 제공합니다.

대신 조건을 붙입니다.

Standard 주택은 최소 5년, Plus와 Prime 주택은 최소 10년을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합니다. Plus·Prime 주택을 되팔 때는 추가로 받은 보조금에 상응해 재판매가격의 일정 비율을 HDB에 반환하는 보조금 환수제도도 적용됩니다.

 

즉 싱가포르는 공공지원을 통해 자가보유 기회를 확대하면서도 공공지원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자산이득과 투기 가능성을 일정 부분 통제하려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덴마크가 장기적인 임대주택 재고와 재투자를 강조한다면, 싱가포르는 자가보유와 공공지원의 결합에 상대적으로 더 무게를 둔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공공주택의 임대료는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공공주택을 계속 보유하려면 또 하나의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

임대료입니다.

임대료를 지나치게 낮추면 입주자의 주거비 부담은 줄어들지만 공공부문의 재정부담이 커집니다. 주택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비용을 모두 임대료에 반영하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이라는 공공주택의 목적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임대 정책에는 항상 두 목표가 충돌합니다.

부담 가능한 임대료(affordability)와 비용 회수(cost recovery)입니다.

오스트리아 사례가 흥미로운 것도 이 두 문제를 제도적으로 함께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살수록 이동하기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공공주택의 거주기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입지의 주택에 시장가격보다 낮은 비용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다면 입주자에게는 그 주택을 떠날 경제적 유인이 줄어듭니다.

소득이 증가하거나 직장·가족구성이 달라져도 공공주택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주택을 장기간 제공할수록 입주자격을 어떻게 재점검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반대로 일정 소득을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퇴거시키면 소득이 조금 늘어날 때 지원을 잃게 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주거복지와 자립유인 사이에서도 균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국은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해외 사례가 한국에 하나의 정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높은 수도권 집중도와 아파트 선호, 토지가격, 전세제도, 공공주택 공급방식은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질문은 던질 수 있습니다.

첫째, 공공주택 정책을 신규 공급량뿐 아니라 재고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주택 10만 호를 새로 공급하더라도 기존 공공주택 상당수가 분양전환돼 재고에서 빠져나간다면 장기적인 공공주택 공급능력은 신규 공급량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주거사다리를 반드시 분양전환과 동일시할 필요가 있는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임대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자산을 축적하고 이후 민간 임대나 자가시장으로 이동한 뒤, 그 공공주택을 다음 무주택자가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주거사다리입니다.

 

셋째, 공공임대 재고를 유지하려면 재정구조가 함께 설계돼야 합니다.

공공임대를 매각하지 않는다면 장기간의 금융비용과 유지·보수·재건축 비용을 누군가는 부담해야 합니다. 임대료, 정부 재정, 장기금융과 재투자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넷째, 기존 입주자의 주거안정과 신규 무주택자의 기회 사이의 균형도 필요합니다.

20년이 지나도 민간시장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고령·저소득 가구와 경제적 여건이 개선된 가구를 동일하게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도 검토할 문제입니다.

 

공공주택 한 채의 가치는 몇 년일까요?

공공주택 정책을 평가할 때 우리는 흔히 몇 채를 공급했는지를 봅니다.

하지만 더 긴 시간축에서 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공공주택 한 채를 10년 뒤 기존 입주자에게 분양하면 한 가구의 자산형성을 도울 수 있고 공공부문은 매각대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주택을 40년 동안 공공임대로 유지한다면 A가구, B가구, C가구가 순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공공부문은 금융비용과 유지·수선비를 계속 부담해야 합니다.

 

따라서 두 방식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분양가격이나 임대료만 비교해서는 부족합니다.

토지와 건설비, 금융비용, 임대료 수입, 유지·보수비, 매각수입, 신규 공공주택을 다시 확보하는 비용, 그리고 여러 가구가 장기간 얻는 주거안정의 편익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은 결국 공공자산의 생애주기와 기회비용의 문제입니다.

 

한 걸음 더

공공주택에 사는 가구의 소득이 늘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활이 나아진 것은 반가운 변화입니다. 그런데 소득이 일정 기준을 조금 넘었다는 이유로 지원이 한꺼번에 줄어드는 제도라면, 가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기대만큼 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정책의 질문은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입주시킬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형편이 나아진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다음 주거로 이동할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지원을 갑자기 끊는 방식과 변화에 맞춰 조정하는 방식은 입주자의 선택에 다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공공주택이 주거사다리가 되려면 들어오는 문과 함께 나가는 길도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 입주자의 자립을 돕고 다음 대기자의 기회도 넓히려면, 이동을 감당할 여건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주거사다리는 지원받는 자리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핵심 공공주택 정책 용어 정리]

• 회전하는 주거사다리 (Circulating Housing Ladder): 한 채의 공공주택에 입주한 가구가 자산을 축적해 민간시장으로 이동하면, 새로운 무주택 가구가 입주하여 혜택이 순환되는 구조입니다.
• 비용회수 원칙 (Cost-recovery Principle): 임대료를 시장가격이 아닌 주택 유지·보수 및 금융비용을 충당하는 수준으로 설정하여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 보조금 환수제 (Subsidy Clawback): 공공지원으로 할인된 가격에 공급받은 주택을 매각할 때, 공공지원에 따른 자산이득이나 보조금의 일부를 공공이 회수하는 제도입니다.

 

참고자료

서울시, 「오세훈 시장, 장기전세주택 입주민과 ‘희망토크’… 내 집 마련 잇는 ‘주거사다리’ 성과 공유」, 2026년 9월 8일 — 장기전세주택 만기 물량과 퇴거 가구의 자가 거주 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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