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승자독식사회》를 읽고
우리는 경쟁이 있는 곳에는 승자와 패자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든 기업이 더 많은 고객을 얻고, 더 뛰어난 운동선수가 더 많은 상금을 받으며, 더 인기 있는 가수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립니다.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1등과 2등의 실력 차이는 아주 작은데, 왜 그들이 받는 보상의 차이는 이렇게 클까요?
로버트 H. 프랭크와 필립 J. 쿡의 《승자독식사회(The Winner-Take-All Society)》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승자독식을 단순히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현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 시장이 작은 차이를 거대한 보상의 차이로 확대시키는 구조에 있습니다.
작은 차이가 엄청난 보상 차이를 만든다
세계 정상급 테니스 선수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계 1위 선수의 실력이 세계 10위 선수보다 몇 배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명 가수나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정상급 스타와 그보다 조금 덜 유명한 사람의 재능이 수십 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얻는 상금, 출연료, 광고료와 수입의 차이는 매우 클 수 있습니다.
능력의 차이보다 보상의 차이가 훨씬 크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자들이 말하는 승자독식 시장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작은 성과의 차이가 거대한 보상의 차이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시장이 커질수록 승자가 가져가는 몫도 커진다
과거에는 아무리 유명한 가수라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관객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운동선수의 경기를 볼 수 있는 사람도 경기장을 찾은 관중 정도였습니다.
기술이 이러한 한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음반과 라디오, 텔레비전이 등장했고 인터넷과 스트리밍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가수 한 명의 음악을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들을 수 있고, 한 선수의 경기를 세계 곳곳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지역에서 세계로 확대된 것입니다.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세계 최고의 음악과 스포츠,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최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수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거대한 시장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술은 시장을 넓혔고, 넓어진 시장은 승자가 가져갈 수 있는 보상의 크기도 키웠습니다.
왜 사람들은 ‘최고’를 선택할까?
여기에 소비자의 선택이 더해집니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려 합니다.
세계 최고의 가수의 음악을 같은 가격에 들을 수 있는데 굳이 두 번째, 세 번째 가수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줄어듭니다.
세계 최고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다면 지역적 한계도 약해집니다.
수많은 소비자가 비슷한 선택을 반복하면 결과는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소수의 사람과 기업에 수요가 집중됩니다.
이른바 ‘슈퍼스타 경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승자가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뛰어나서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뛰어난 승자가 거대한 시장 전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는 것입니다.
승자는 실력만으로 만들어질까?
《승자독식사회》를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을 보면서 결과를 능력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실력과 노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승자독식 시장에서는 그것만으로 결과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시장에 진입한 시기, 기술 변화에 대한 대응, 초기의 작은 우위, 자본과 인재의 확보, 그리고 때로는 우연과 운도 작용합니다.
특히 초기의 작은 성공이 다음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많은 소비자가 선택한 기업에는 더 많은 자본과 인재가 모입니다.
기업은 이를 이용해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합니다.
더 좋은 제품은 다시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입니다.
성공이 성공을 강화하는 자기강화 과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차이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승자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뿐일까?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승자에게 엄청난 보상이 돌아간다면 당연히 많은 사람이 승자가 되기 위해 경쟁합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크다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경쟁에 뛰어들 이유가 생깁니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극소수만 성공할 수 있는 분야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모두가 승자가 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각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로는 과도한 경쟁과 자원 낭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이 승자독식 사회에서 우려하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문제의식을 단순히
“승자가 너무 많은 돈을 번다.”
라고 이해하면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승자가 되기 위해 사회 전체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르고 있는가?”
경쟁을 없애면 해결될까?
그렇다고 경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경쟁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비용을 낮추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합니다.
개인 역시 경쟁을 통해 능력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합니다.
슘페터가 강조했던 혁신과 ‘창조적 파괴’ 역시 이러한 시장의 역동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승자독식 문제의 해답이 ‘승자를 없애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승자가 탄생한 뒤에도 새로운 경쟁자가 계속 등장할 수 있는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승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기 시작한다면 시장경제의 장점은 오히려 약해집니다.
승자가 존재하는 시장과 승자가 시장을 영원히 지배하는 시장은 다릅니다.
AI 시대에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승자독식사회》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오늘날과 같은 AI 시대가 열리기 훨씬 전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지금 이 책의 문제의식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AI와 디지털 경제에서는 성공한 기술과 서비스가 세계 시장으로 확산되는 속도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릅니다.
플랫폼에서는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서비스의 가치가 높아지고, 다시 새로운 이용자가 몰리는 네트워크 효과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AI 산업에서도 앞서가는 기업으로 자본과 인재, 데이터가 집중되면 선두 기업의 우위가 다시 강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도체와 플랫폼, 콘텐츠 산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은 새로운 도전자를 탄생시키는 힘인 동시에 승자의 우위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질문이 하나 더 필요합니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도전자가 계속 등장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경제 인사이트 — 승자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승자’다
얼마 전 ABBA의 명곡 **「The Winner Takes It All」**을 들으며 승자독식 자본주의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노래 속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저는 그 노래를 시장경제에 비추어 보면서 경쟁이 승자를 만들지만, 건강한 자본주의는 새로운 승자가 계속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승자독식사회》를 읽으면 그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됩니다.
승자가 존재하는 것과 승자가 모든 기회를 독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시장은 성공한 사람에게 보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혁신과 도전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보상이 기존 승자의 지위를 영원히 고착시키는 힘으로 변한다면 시장의 역동성은 오히려 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한 시장을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나 거대한 승자가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자가 얼마나 자유롭게 등장할 수 있는가인지도 모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ABBA 「The Winner Takes It All」과 승자독식 자본주의
ABBA의 노래에서 출발해 승자독식이라는 경제현상을 생각해 본 글입니다.
이번 《승자독식사회》 독후감과 함께 읽으면 음악에서 시작된 질문이 경제학의 문제의식으로 어떻게 발전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맺음말
《승자독식사회》를 단순히 부자나 성공한 사람을 비판하는 책으로 읽는다면 이 책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발견한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현대 시장에서는 작은 차이가 이토록 거대한 보상의 차이로 확대되는가?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지불하고 있는가?
경쟁은 자본주의를 움직입니다.
경쟁이 있기 때문에 기업은 혁신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경쟁의 목적이 단지 한 명의 거대한 승자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ABBA는 노래했습니다.
“The Winner Takes It All.”
그러나 《승자독식사회》를 덮고 나니 그 문장 뒤에 다른 질문 하나를 붙이고 싶어집니다.
“그렇다면 다음 승자는 누가 될 수 있는가?”
오늘의 승자가 존재하면서도 내일의 도전자가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승자독식 시대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강한 시장경제의 모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