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재 부동산 토론회를 보며 든 생각
집값 문제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지난 7월 23일 대통령이 주재한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지켜봤습니다.
주택 공급부터 대출, 세금, 실수요자 보호, 다주택자 문제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토론을 보기 전에는 어떤 새로운 정책이 나올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긴 토론을 지켜보고 난 뒤에는 오히려 다른 생각이 더 강하게 남았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정말 어렵구나.
경제학에는 수요와 공급, 세금, 금리, 대출 등 부동산시장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부동산 문제는 어느 하나만으로 풀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
지난 7월 23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 전체 영상입니다. 주택 공급과 금융, 세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공식 유튜브 —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 전체 영상
집은 사는 곳이면서 동시에 자산입니다
부동산 문제가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주택의 이중적인 성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누구에게나 안정적인 주거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택은 다른 상품과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집은 동시에 우리나라 가계가 보유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집값이 크게 오르면 집이 없는 사람은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집니다. 반면 집을 가진 사람에게 가격 상승은 자산가치의 증가입니다.
여기에서 이해관계가 갈라집니다.
무주택자에게 좋은 부동산시장과 주택 보유자에게 좋은 부동산시장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집값이 안정되기를 바라면서도 내가 가진 집값은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쩌면 부동산 문제의 어려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공급을 늘리면 해결될까?
집값 이야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해법 가운데 하나가 공급 확대입니다.
경제학의 기본원리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요에 비해 주택이 부족하다면 공급을 늘려 가격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택 공급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택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를 받고 건물을 짓기까지 여러 해가 걸릴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주택 한 채'가 아닙니다.
직장과 가까운 집, 교통이 편리한 집, 교육환경이 좋은 집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에 있는 주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주택이 충분하다는 통계와 특정 지역의 집값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공급 문제도 단순히 몇 채를 더 짓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에, 어떤 집을, 언제 공급할 것인가.
이 질문이 함께 따라옵니다.
대출을 조이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집값이 빠르게 오르면 정부는 대출을 규제하기도 합니다.
빚을 내 집을 사는 수요가 줄어들면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딜레마가 있습니다.
대출을 강하게 규제하면 현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오히려 현재 자산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소득을 벌어갈 젊은 실수요자가 더 큰 제약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금융정책과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넓혀주는 정책이 충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대출규제도 누구에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금을 올리면 집값은 잡힐까?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유세를 높이면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하는 데 따르는 부담이 커집니다. 투기적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금 역시 한쪽 효과만 볼 수는 없습니다.
보유세를 지나치게 높이면 소득에 비해 주택가격이 크게 오른 장기 거주자의 부담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양도소득세가 지나치게 높으면 주택 소유자가 집을 팔지 않으려 하면서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줄어드는 현상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제도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정책을 볼 때 정책의 의도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정책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똘똘한 한 채'가 보여주는 정책의 역설
토론을 보면서 특히 흥미롭게 느낀 부분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똘똘한 한 채' 문제였습니다.
여러 채를 보유하는 데 불리한 제도가 강화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주택을 보유하려는 사람이라면 여러 채보다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한 채를 선택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특정 지역의 고가주택으로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책의 목표는 투기수요를 줄이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대응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경제정책의 어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책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바뀐 행동이 다시 정책의 효과를 바꿉니다.
경제정책은 실험실의 공식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결국 부동산은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토론을 지켜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부동산 문제가 단순히 경제학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주택자와 유주택자의 입장이 다릅니다.
서울과 지방의 상황도 다릅니다.
청년과 고령자의 이해관계도 같지 않습니다.
1주택자와 다주택자, 실거주자와 투자자의 생각도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정책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부동산정책을 찾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균형점을 어디에서 찾느냐일 것입니다.
토론을 보며 좋았던 점
그럼에도 이번 토론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문제를 공급 하나, 세금 하나, 대출 하나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고 여러 의견을 공개적으로 논의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토론을 많이 한다고 반드시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선택하고 실제 시장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동산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한 문제일수록 왜 그런 정책을 선택하는지 설명하고 다른 의견을 듣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걸음 더
토론을 보기 전에는 이번에도 집값을 잡을 새로운 대책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토론을 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집값을 단번에 잡을 수 있는 묘책'을 찾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 묘책이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부동산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급을 늘리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투기는 억제하되 실수요자의 기회를 지나치게 막지 않아야 합니다.
세금을 부과하되 사람들이 그에 대응해 어떻게 행동할지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정책을 자주 뒤집기보다 사람들이 앞으로의 제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번 토론을 지켜보면서 결국 이런 생각이 남았습니다.
좋은 부동산정책은 집값을 움직이는 하나의 묘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집은 삶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동산 문제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