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읽는 이유 (제1편)
최근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 논란이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성과를 많이 낸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보상의 규모보다 그 기준이 과연 공정한가를 묻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사실 이 질문은 성과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금, 복지, 교육, 연금, 부동산, 입시….
우리가 사회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무엇이 공정한가?"
50여 년 전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출간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정의론』은 정치학, 경제학, 법학, 행정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책은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원칙을 제시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왜『정의론』인가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사회가 반드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어떤 규칙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갈등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AI는 누구의 일자리를 대신할 것인가.
플랫폼 기업은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
부자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가.
성과급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이처럼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회·경제 문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무엇이 공정한가?"
롤스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정의론』은 단순한 철학책이 아니라 오늘날의 경제와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의는 평등과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모두가 똑같이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롤스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능력도 다르고, 노력도 다르며,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결과를 얻는 사회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반드시 정의로운 사회도 아닙니다.
롤스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공정한 기회와 공정한 규칙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규칙 아래에서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결과의 차이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정의론』은 '얼마를 나눌 것인가'보다 '어떤 원칙으로 사회를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한 책입니다.
'무지의 베일'이 던지는 질문
『정의론』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입니다.
상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날지,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날지,
직원이 될지,
경영자가 될지,
주주가 될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회의 규칙을 만든다면 어떤 제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마 어느 한쪽에만 유리한 규칙은 쉽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 내가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롤스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만든 규칙이야말로 가장 공정한 규칙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표현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정한 규칙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는 무엇보다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의 첫 번째 원칙으로 기본적 자유의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사의 자유,
법 앞의 평등과 같은 자유는 어떤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성장은 정의로운 사회의 기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풍요를 만들 수 있지만 자유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입니다.
불평등도 정의로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롤스를 평등주의자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경쟁과 성과에 따른 보상의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라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불평등은 사회 전체, 특히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과를 낸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혁신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상의 크기가 아니라 보상의 기준과 원칙입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규칙이라면 차이는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규칙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갈등은 시작됩니다.
왜 『정의론』은 아직도 읽히는가
애덤 스미스는 시장이 어떻게 부를 만드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케인스는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롤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부는 어떤 원칙에 따라 나누어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과급 논란도,
세금도,
복지도,
교육도,
연금도,
부동산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이 공정한가?"
그래서 『정의론』은 과거의 철학책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를 이해하는 살아 있는 고전입니다.
한 걸음 더
우리는 모두 공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공정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장한다고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롤스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지의 베일이며, 현실에서는 역지사지입니다.
경제는 숫자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신뢰로 유지됩니다.
신뢰는 강제나 법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한 규칙이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는 지속될 수 있습니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완벽한 평등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어려운 과제를 남겼습니다.
"내가 어느 위치에 놓일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사회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모두가 같은 결과를 얻는 사회가 아닙니다.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규칙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입니다.
그것이 『정의론』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이며, 우리가 이 고전을 다시 펼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
내가 직원도, 경영진도, 주주도 아닌 입장이라면 지금의 규칙을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